2006/12/28 22:10

마고신화

한국인의 경전
부도지(符都誌)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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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麻故)의 창생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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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마고성(麻姑城)은 지상(地上)에서 가장 높은 큰 성(城)이다. 천부(天符)를 봉수(奉守)하여,先天(선천: 태어날 때부터 몸에지니고 있는 본성)을 계승하였다. 마고성중에 4사람의 천인이 4방에 쌓은 제방을 관리하며 음(音)을 조절하고 있었다. 첫째,황궁(黃穹)씨요, 둘째, 백소(白巢)씨요, 셋째, 청궁(靑穹)씨요, 넷째는 흑소(黑巢)씨였다.

궁희(穹姬)씨는황궁씨와 청궁씨를 낳고 소희(巢姬)씨는 백소씨와 흑소씨를 낳았다. 궁희와 소희는 모두 마고(麻姑)의 딸이다. 마고는짐세(朕世)에서 태어나 희노(喜怒)의 감정이 없으므로, 선천(先天)을 남자로 하고, 후천(後天)을 여자로 하여, 배우자가 없이,궁희와 소희를 낳았다. 궁희와 소희 역시 선천의 정을 받아, 혼인을 하지 아니하고, 두 천인(天人)과 두 천녀(天女)를 낳았다.합하여 네 천녀가 되었다.

[ 제 2장, ]
선천시대의 마고대성(麻姑大城)은, 위에 있고실달성(實達城)과 허달성(虛達城)은 나란히 있었다. 처음 지구상은 햇볕만이 따뜻하게 내려 쪼일 뿐, 눈에 보이는 물체는 없었다.오직 8 呂音(여음)만이 하늘에서 들려 올 뿐이었다. 실달성과 허달성은 모두 이 음에서 나왔다. 마고대성의 마고도, 또한 이음(音)에서 나왔다. 이것을 짐세(朕世)라 한다.

짐세 이전에, 율려(律呂)가 몇 번 부활하여, 별들(星辰)이출현하였다. 짐세가 몇 번 종말을 맞이할 때, 마고가 궁희(穹姬)와 소희(巢姬)를 낳아, 두 딸로 하여금, 오음칠조(五音七調)의음절(音節)을 맡아보게 하였다. 마고성 중앙에 처음은 땅에서 地乳(지유: 젖)가 흘러 나왔다. 궁희와 소희가, 또 네천인(天人)과 네 천녀(天女)를 낳아, 지유를 먹여 길렀다. 4 천녀에게는 여(呂)를, 4 천인에게는 율(律)을 맡아보게하였다.

[ 제 3장, ]
후천(後天)의 운(運)이 열렸다. 율려(律呂)가 다시 부활하여, 곧음상(音象)을 이루어보니, 성(聲:소리)와 음(音)이 섞인 것이었다. 마고가 실달대성(實達大城)을 끌어당기자 실달대성의 기운이상승하여, 수운(水雲)이 지상의 위로 덮고, 실달대성의 몸체가 개벽되어 지상이 평평하게 되고 물이 응결되어 육지와 바다가 되고산천(山川)이 나란히 넓게 뻗었다. 이에 강물의 지역이 변하여, 지구의 경계를 이루고 지구 중력의 상하 운동에 의하여 비로소역수(曆數)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화(火), 수(水), 토(土)의 氣(기)가 서로 섞여 빛이 되고 낮과 밤의 사계절로 인하여초목(草木)과 금수(禽獸)들이 전 지구에 많이 생겨났다.

이에 네 천인이 만물의 본음(本音)을 나눠서관장(管掌)하게 된다, 토(土)를 맡은 자는 황(黃)이 되고, 수(水)를 맡은 자는 청(靑)이 되어, 각각 궁(穹)을 만들어,직책을 수호 하였다. 기(氣)는 백(白)을 관리하고, 화(火)는 흑(黑)을 관리하고 각각 소(巢)를 만들어, 직책을 지키니,이것으로 인하여 성씨(姓氏)가 되었다. 이로부터 기(氣)와 화(火)가 공동으로 맡아 하늘의 찬 기운과 어둠을 없이하고,수(水)와 토(土)는 감응(感應)하여, 지상의 생명에게 좋지 못한 일이 없어졌다. 이는 음상(音象)이 위에서 언제나 비춰주고,향상(響象)이 아래에서 골고루 퍼져서 듣게 해 주기 때문이었다.

[ 제 4장 ]
이 때에, 본음(本音)을맡아 관리하는 자가 비록 여덟 사람이 있었으나, 향상을 수증(修證)한 자는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만물이 잠깐 사이에 태여났다가, 잠깐 사이에 없어지며, 조절이 되지 못하였다. 마고(麻姑)가 곧, 네 천인과 네 천녀에게 명하여 갈빗대 뼈로출산(出産)을 하게 하시었다. 이에 네 천인이 네 천녀와 결혼하여, 각각 삼남(三男) 삼녀(三女)를 낳았다. 이들이 지상의인간세계에서 처음 나타난 인간의 조상이 되었다.

그 남녀가 서로 결혼하여, 몇 대를 지나는 사이에, 각각의족속들이 3000명으로 불어나게 되었다. 이로부터 12사람의 시조는 각각 성문(城門)을 지키고, 그 나머지 자손은 향상(響象)을나눠서 관리하고, 수증(修證)하게 하니, 비로소 역수(曆數)가 조절되었다. 이 시대는 성중(城中)의 모든 사람의 품성(稟性)이순정(純精)하여, 능히 조화(造化)를 알고, 지유(地乳)를 마시므로, 혈기(血氣)가 맑고 깨끗하였다. 귀에는 오금(烏金)이있어, 천음(天音)을 모두 듣고, 길을 갈 때는, 능히 뛰어서 걸을 수 있고 자기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고 자기의 맡은임무를 마치면 금(金)이나 먼지로 변하여 그 성체(性體)를 보전하고, 혼식(魂識)이 일어남에 따라, 소리를 내지 않고도 능히말을 하고, 백체(魄體)로 활동 할 때는 형상을 감추고도 능히 행동하여, 땅 기운(地氣) 중에 퍼져 살면서, 그들의수명(壽命)은 한이 없었다.

[ 제 5장 ]
백소씨족(白巢氏族)의 지소(支巢)씨가, 여러 사람과 함께젖을 마시려고 유천(乳泉)에 갔는데, 사람은 많고 샘은 작으므로, 여러 사람에게 양보하고, 자기는 마시지 못하였다. 이렇게하기를 다섯 차례나 되었다. 곧 돌아와 소(巢)에 오르니, 배가 고파 어지러워 쓰러졌다. 귀에는 희미한 소리가 울렸다.오미(五味)를 맛보니, 바로 소(巢)의 난간의 넝쿨에 달린 포도열매였다. 일어나 펄쩍 뛰었다. 그 독력(毒力)의 피해때문이었다. 곧 소(巢)의 난간에서 내려와 걸으면서 노래하기를. [넓고도 크구나 천지여! 내가 기운을 능가하는 도다. 이 어찌도(道)인가! 포도의 힘이로다.] 라고 노래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다 지소씨의 말을 의심하였으나. 지소씨가 참으로 좋다고하므로, 여러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각하고, 포도를 많이 먹었다, 과연 그의 말과 같았다. 이에 제족이 포도를 많이 먹게 되었다.

[ 제 6장 ]
백소씨의 사람들이 듣고 크게 놀라, 곧 수찰(守察)을 시켜 금지시켰다. 이는 또한 금지하지아니하기로 한 금지의 자재율(自在律)을 스스로 파기하는 것이었다. 이 때에 열매를 먹는 습관과 수찰을 금지하는 법이 시작되자,마고가 성문을 닫고 수운(水雲)의 위에 덮혀 있는 실달대성의 기운을 거두어버렸다.

포도 열매를 먹고 사는사람들은 모두 잇 빨이 생겼으며, 그 침(唾)은 뱀의 독(毒)과 같았다. 이는 강제로 다른 생명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수찰을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눈이 밝아져서, 올빼미 눈과 같이 보니, 이는 사사로이 공률(公律)을 훔쳐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까닭으로, 모든 사람들의 혈육이 탁(濁)하게 되고, 심기(心氣)가 혹독하게 변하여져서 드디어 천성을 잃게 되었다. 귀에 있던오금(烏金)이 변하여 토사(兎沙)가 되므로, 끝내는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발은 무겁고, 땅은단단히 굳어져서 걸음을 걷되 뛸 수가 없었으며, 태정(胎精)이 불순하여, 짐승처럼 생긴 사람을 많이 낳았다. 사람들은 나이에비하여 정신적으로 빨리 성숙하여 수명이 그 죽음에서 변천하여 화(化)하지 못하고 썩게 되었으니, 이는 생명의 수(數)가 얽혀미혹(迷惑)하게 되고, 수명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 제 7장 ]
이에 세상 사람들이 지소씨를원망하고 타박하니, 크게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져서, 권속(眷屬)을 이끌고 성을 나가, 멀리 가서 숨어 버렸다. 또 포도 열매를먹은 자와, 수찰을 하지 아니한 자도, 역시 모두 성을 나가,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가니, 황궁씨가 그들의 정상을 불쌍하게 여겨고별(告別)하며 말하기를, [여러분의 미혹(迷惑)함이 심대(甚大)하여 성상(性相)이 변하여 다르게 되었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이성중(城中)에서 같이 살 수가 없게 되었소. 그러나 스스로 수증(修證)하기를 열심히 하여, 미혹한 량을 남김없이 깨끗이씻는다면, 자연히 복본(復本) 할 것이니, 노력하고 노력하시오.]하였다. 이 때에 기(氣)와 토(土)가 서로 마주치어,시절(時節)을 만드는 광선(光線)이, 한 쪽에만 생기므로, 차고 어두웠으며, 수(水)와 화(火)가 조화를 잃으므로,血氣(혈기)로 생겨난 모든 종류들은 시기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이는 빛을 거둬들여서 비추어 주지 아니하고, 성문이닫혀 있어 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 제 8장 ]
더구나 성을 떠난 사람들 중에서 전날의 잘못을뉘우친 사람들이, 성 밖에 이르러, 직접 복본(復本)을 하려고 하였다. 이들은 복본에 때가 있음을 모르는 까닭이었다. 곧 젖샘을얻고자 성곽의 밑을 파 해치니, 성터(城址)가 파손되어 샘의 근원이 사방으로 흘러 내렸다. 그러나 곧 단단한 흙으로 변하여 마실수가 없었다. 그러한 까닭으로 성 안에 마침내 젖이 마르니 모든 사람들이 동요하며, 풀과 과일을 다투어 취하므로, 혼탁(混濁)이극에 이르러 청정(淸淨)을 보존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황궁(黃穹)씨가 모든 사람들 가운데 어른이었으므로, 곧백모(白茅)를 묶어 마고(麻姑)의 앞에 사죄하며 오미(五味)의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고, 복본할 것을 서약하였다. 물러나와제족(諸族)에게 고하기를 오미의 재앙이 꺼꾸로 밀려오니, 이는 성을 나간 사람들이 이도(理道)를 알지 못하고, 다만혹량(惑量)이 불어났기 때문에 청정(淸淨)은 이미 없어지고, 대성(大城)이 장차 위험하게 되었으니, 앞으로 어찌할 것인가?

이때 모든 천인(天人)들이 나누어살기로 뜻을 정하고 대성을 완전하게 본전하기로 결정되자 황궁씨가 곧 천부(天符)의 신표(信標)를나누어 주고, 칡을 캐서 식량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사방에 나누어 살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청궁씨는 권속을 이끌고 동쪽문으로 나가 운해주(雲海洲)로 가고, 백소씨는 권속을 이끌고 서쪽 문으로 나가 월식주(月息洲)로 가고, 흑소씨는 권속을 이끌고남쪽 문으로 나가 성생주(星生洲)로 가고, 황궁씨는 권속을 이끌고 북쪽 문으로 나가 천산주(天山洲 : 천산 산맥 동쪽祁連山(기련산)으로 갔다. 천산주는 매우 춥고, 매우 위험한 땅이었으나 황궁씨가 스스로 어려운 고통을 참고 반드시복본(復本)하기로 맹세했기 때문이었다.

[ 제 9장 ]
모든 부족들이 나누어져 살기로 하고 각 주(洲)에이르니, 어느덧 천년이 지났다. 옛날에 먼저 성을 나간 사람들의 자손들이 각 지역에 섞여 살면서 그 세력이 자못 강성하였다.그러나 거의가 근본을 잊어버리고, 성질이 사나와져서, 새로 들어온 부족들을 나누어져 살고 있던 부족을 보면, 무리를 지어추격하여 그들을 해하였다.

나누어져 살던 부족들은 이미 주거지가 정하고 바다와 산이 막히고 멀리 떨어져 있어,내왕이 거의 없었다. 이에 마고가 궁희와 소희와 함께 대성을 보수하고, 천수(天水)를 부어 성내(城內)를 깨끗이 청소하고,대성(大城)을 허달성(虛達城)의 위로 옮겨버렸다. 이 때에 청소를 한 물이 동과 서에 크게 넘쳐 운해주의 땅을 크게 부수고,월식주의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이로부터 지계(地界)의 중심(重心)이 변하여, 역수(曆數)가 차이가 생기고 처음으로 월삭(朔)과지각판의 현상이 있었다.

[ 제 10장 ]
황궁씨가 천산주에 도착하여, 미혹함을 풀고 복본(復本)할 것을서약하고, 무리에게 수증(修證)하는 일에 부지런히 힘쓰도록 권고하였다. 곧 장자(長子) 유인(有因)씨에게 명하여, 인간 세상의일을 밝히게 하고, 둘째와 셋째 아들로 하여금 모든 주(洲)를 순행(巡行)하게 하였다.

황궁씨가 곧천산(天山)에 들어가 돌이 되어, 길게 울음소리로 조음(調音)을 울려, 인간 세상의 미혹한 량을 남김없이 없앨 것을 도모하고,기필코 대성에서 복본하기로 맹세한 서약을 성취하였다. 이에 유인씨가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이어 받았다. 이것은 곧천지본음(天地本音)의 상(象)으로서 진실로 근본이 하나임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유인씨가 사람들이 추위에 떨고,밤에는 어둠에 시달리는 것을 불쌍하게 여겨, 나무를 뚫어서 마찰을 시켜 불을 일으켜서 밝게 비춰주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또음식물을 불로 익혀서 먹는 법을 가르치니, 모든 사람들이 대단히 기뻐하였다. 유인씨가 천년을 지내고 나서, 아들한인(桓因)씨에게 천부를 전하고 곧 산으로 들어가 禊祓(계불)을 전수(專修)하며 나오지 아니하였다.

환인씨가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인간 세상을 증리(證理)하는 일을 크게 밝히니, 이에 햇빛이 고르게 비추고, 기후가 순조로와 생물들이 거의안도감을 얻게 되어, 사람들의 괴상한 모습이 점점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이는 3세(황궁, 유인, 환인)가 수증하기 삼천년에 그 공력이 거의 없어질 만큼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註釋 : 1, 계사(禊事: 음력 3월 3일 上巳(상사)날水上에서 재앙을 제거하고 복을 구하는 연중 행사의 하나. 2, 계사(禊祠 : 몸의 재앙을 씻는 제사, 3, 불제(祓除 : 재앙을없애고 복을 구함. 털어서 깨끗하게 함. 4, 上巳: 음력 정월의 첫 번째 巳日(뱀날) [ 이날 머리를 빗으면 그해 집안에 뱀이들어온다고 하여 남녀모두가 빗질을 하지 않았음. 5, 불계(祓禊 : 3월 上巳節(상사절)에 물가에서 재앙을 없애기 위해 행하는푸닥거리 6, 불양(祓禳 : 귀신에게 빌어 액을 막기 위하여 굿이나 푸닥거리를 함

[ 제 11장 ]
환인씨의 아들 환웅씨는 태어날 때부터 큰 뜻을 가지고 있었다. 천부 삼인을 계승하여, 계불(禊祓: 3월 上巳節(상사절)날 재앙을없애기 위하여 물가에서 푸닥거리 행사를 하고 “ 환웅천왕의 도 ” 를 수립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 유래를 알게 하였다.어느덧 인간 세상은 의식(衣食)의 일에만 편중하므로, 환웅씨는 무여율법(無餘律法) 4조를 제정하여, 환부(鰥夫)로 하여금조절하게 하였다.

1조 행적(行蹟)을 때때로 깨끗이 하라, 모르는 사이에 생귀(生鬼)가 되지 않게 하고 번뇌로막혀, 마귀(魔鬼)가 되지 않도록 하여 인간 세상으로 하여금, 통명무여일장(通明無餘一障)하게 하라. 2조 재물을 취적(聚積)한사람은 죽은 뒤에 공을 제시하여, 생귀의 더러움을 말하지 않게 하고, 함부로 허비하여, 마귀가 되지 않도록 하여, 인간 세상으로하여금, 보흡무여일감(普洽無餘一憾) 하라. 3조, 고집이 세고 사혹(邪惑)한 자는 광야(曠野)에 귀향을 보내, 때때로 그 사옥함을 씻게 하여, 사기(邪氣)로 하여금, 세상에 남김없이 하라. 4조, 큰 죄를 범한 자는 섬도(暹島)에 유배시키고 죽은 뒤에그 시체를 태워서, 죄집(罪集)으로 하여금 지상에 죄인을 없이하라, 이었다.

또한 궁실(宮室)을 짓고, 사람들이집을 지어 살도록 하고, 배와 차(車)를 타고 멀리 여행하는 법을 가르쳤다. 이에 환웅씨가 바다에 배를 띄워 시승(始承)하여사해(四海)를 순방하니, 천부를 조증(照證)하여 수신(修信)하고, 제족의 소식을 소통하여 근본을 잊지 않기를 호소하고, 궁실을짓고, 배와 차를 만들고, 화식(火食)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

환웅씨가 돌아와 8음2문(八音二文)을수학하여, 역법(曆法)을 정하고 의약술(醫藥術)을 수업하며, 천문(天文)과 지리(地理)를 저술하시여 인간 세상을 널리유익하였다. 이는, 세대는 멀어지고, 법은 해이해져서, 모든 사람들이 몰래 사단(詐端)을 모색하는 일이 늘어나기 때문에,일용(日用)하는 사물 사이에서, 근본의 도를 보전하여 분명히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이로부터 비로소 학문하는 풍조가 일어나니,인성(人性)이 혼매(昏昧)하여, 배우지 않고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 제 12장 ]
환웅씨가임검(壬儉)씨를 낳았다. 이때에 사해의 제족(諸族)이 천부의 이치를 講義(강의)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미혹(迷惑)속에 빠져,인간 세상이 고통스러웠다. 임검씨가 천하에 깊은 우려를 품고, 환웅천왕의 도를 修道(수도)하여 계불 의식을 행하여, 천부삼인을이어받았다. 밭을 갈고 농사를 짓는 법과 뽕나무를 심어 누에치는 법과 그릇을 굽는 법과 칡을 먹는 법을 가르치고, 농작물을모아서 교역(交易)하는 제도를 공포하고, 종족들의 계보를 기록하였다. 임검씨는 뿌리를 먹고, 이슬을 마시어 털이 난 몸으로사해의 여러 부족을 두루 돌아다니며, 방문하여 백년 사이에 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천부로 조증(照證)하여수신(修信)하고, 해혹 복본(解惑復本) 할 것을 맹서하며, 천부도(天符都)를 건설할 것을 약속하였다. 이는 지역은 멀고 소식이끊어져, 제족의 언어와 풍속이 점차로 변하여 서로 다르게 되었기 때문에, 함께 모여 협력하고 화합하는 자리에서, 천부의 이치를강의하여 분명하게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이 후일에 모여서 강의하는 실마리가 되었다. 인간의 일은 번거롭고 바빠서강의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때문이었다.

[ 제 13장 ]
임검(壬儉)씨가 돌아와 부도(符都)를 건설할땅을 택하였는데 동북의 자방(磁方)이었다. 이는 2와 6이 교감(交感)하는 핵심지역이요, 4와 8이 상생(相生)하는 결과의땅이었다. 산세가 수려한 명산으로 강물이 만리에 뻗어 있고, 바다와 육지가 서로 통하여 십방으로 갈리어 나가 곧 9와 1이 끝과시작이 다하지 않는 터전이었다.

삼근영초(三根靈草)와 오엽서실(五葉瑞實)과, 칠색보옥(七色寶玉)이 금강(金剛)의심장부에 뿌리를 내려, 전 지역에 두루 가득하였다. 이는 1, 3, 5, 7의 자삭(磁朔)의 정(精)이 모여, 물체를 만드는좋은 길지의 땅이었다. 곧 태백산(중국 섬서성) 정상에 천부단(天符壇)을 쌓고 사방에 보단(堡壇)을 설치하였다. 보단의 사이에는각각 세 겹의 도량 길로 통하게 하였다. 도랑 길의 사이는 천리였으며, 도랑 길의 좌우에 각각 관문을 설치하여 지키게 하였다.

이는 마고본성(麻故本城)에서 그 법을 취한 것이었다. 天符都(천부도)의 하부에 마을을 만들고 둘레의 연못은 삼해(三海)에잠기었다. 사진(四津)과 사포(四浦)가 천 리 간격으로 연결되어, 동서로 줄을 지어 둘러쌌다. 4진(津)과 4포(浦)사이에 또한6부를 설치하였다. 6부에는 제족(諸族)이 살았다. 부도가 이미 이루어지자 그 규모가 웅장하고 화려하여 밝은 빛은 사해의 제족을총화하기에 충분하였으며, 제족의 생활에 생맥(生脈)이었다.

[ 제 14장 ]
이에 황궁씨의 후예 6만명이 (천부도)에 이주하여 지키고, 곧 나무를 베어 뗏목을 만들어서 천부의 신표(信標) 8만개를 새겨서 천지(天池)의 물에흘려보내, 사해의 제족을 초청하였다. 제족이 그 뗏목에서 천부의 신표를 얻어서 보고, 차례로 모여들어, 박달나무 숲에 신시를크게 열고, 수계정심(修禊淨心)하여, 천상(天象)을 살펴보게 하고 마고의 계보(系譜)로 그들의 족속(族屬)을 밝히고, 천부의음을 기준으로 삼고 어문(語文:소리 글, 한글)으로 정리 하였다.

또 북진(北辰)과 칠요(七耀)의 위치를 정하여반석의 위에서 속죄의 희생물을 구워 전(奠)을 올리고, 모여서 노래하며 환웅천왕의 음악을 연주하였다. 제족이 방장산(方丈山)방호의 굴(方壺之堀)에서 칠보의 옥을 채굴하여 천부를 새기었다. 이것을 방장해인(方丈海印)이라 하며 칠난(七難)을 없애고돌아갔다. 이로부터 10년마다 반드시 신시를 열어 세상의 모든 종족은 조선의 어문(語文: 한글)을 기준으로 삼아 천하가 하나로되어, 인간 세상이 화합하여 태평시대를 이루었다. 인하여 바닷가에 城隍堂(성황당)을 지어 전을 올리고, 푸닥거리를 행하여제족으로 하여금 천부도에 머물러 살게 하니, 그 후 천년 사이에 성황당이 지구 전역에 널리 퍼졌다.

[ 제 15장 ]
또澧(예:호남성에 있는 강) 와 양(陽: 섬서성 영강현에서 발원하여 호북성을 관통하여 흐르는 양자강의 지류)이 교차하는 중심지에조시(朝市)를 설치하고, 팔택(八澤: 雷夏(뇌하), 孟諸(맹제, 荷澤(하택), 榮澤(영택), 大野(대야), 彭蠡(팽려),震澤(진택), 雲夢(운몽)에 해시(海市)를 설치하여 매년 10월에 조제(朝祭)를 행하니, 사해의 제족이 모두 지방 토산물을바쳤다.

산악의 제족은 사슴과 양을 바치고, 해양의 제족은 물고기와 조개를 바치고 송축하기를 [고기와 양을희생으로 조제에 공진하오니, 오미의 피를 신선하게 하여 주시고, 창생의 재앙을 그치게 하소서] 이를 가르켜 조선제(朝鮮祭)의축문이라 하였다. 이 때에 산악과 해양의 제족이 물고기와 고기를 많이 먹으니, 교역하는 물건이 거의 다 저린 어물과 조개와 가죽종류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곧 희생제(犧牲祭)를 행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반성하게 하고, (마고 할머니= 여호와)의 공에보답하게 하였다.

피에 손가락을 꽂아 생명을 성찰하고, 땅에 피를 부어 기른 공을 보답하게 하였다. 이는 물체가오미의 잘못을 대신 보상하여, 재앙을 없애주기를 기원하는 것이었다. 즉 육친고충의 고백이었다. 매년 조선제 때에는 물화(物貨)가폭주 하므로 4진과 4포의 해시를 크게 열었다. 사람들은 몸을 깨끗이 하고 재앙을 없애기 위해 행하는 푸닥거리는 지리(地理)를거울삼았다. 교역법의 시행은 그 값과 분량을 정하고, 물성(物性)의 근본을 밝혀서 이용하도록 하였다. 또 부도 팔택의 모양을본떠서 뭇을 파고, 곡수(曲水) 사이의 보새(報塞)에 모여서 제물을 올리고 구제를 받는 의식(儀式)을 행하였다. 제족이 봉래산원교봉(圓嶠峯)에서 오서(五瑞)의 열매를 얻었다. 즉 잣나무 열매였다. 봉래 해송(海松)이라 하며, 은혜와 오행(五幸)을 얻어서돌아갔다. 이로부터 사해의 산업이 일어나서 교역이 왕성하게 되므로, 천하가 여유롭고 풍족하였다.

[ 제 16장 ]
천부도시(市)에 온 사람들은 영주(瀛州), 대여산(岱與山:淮水(회수와 岱山(대산) 계곡에서 삼영근(三靈根)을 채취하였는데 곧인삼이었다. 그것을 영주 해삼이라 하며, 능히 삼덕(三德)을 보전하고 돌아갔다. 대개 인삼은 그 수격(數格)이 갖추어 져야하는데 자삭방(磁朔方)에서 난 것은 반드시 장생하니 40년을 1기로 휴먼하고, 13기를 1삭(朔)으로 축정(蓄精)하고, 4삭을경과하여 씨(子)를 맺어 화(化)하게 된다. 이러한 것은 부도의 지역이 아니고는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방삭초(方朔草)라하니, 세상에서 불사약이라 하는 것이 이것이다.

혹 작은 뿌리라도 부도의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은 모두 신령한효험이 있으므로, 시(市)에 온 사람들은 반드시 그것을 구하였다. 대저 삼근영초(三根靈草)의 인삼과, 오엽서실(五葉瑞實)의잣과, 칠색보옥(七色寶玉)의 天符印(천부인)은 진실로 불암삼역(不咸三域)의 특산이요, 사해제족(四海諸族)의 천혜(天惠)이였다.

[ 제 17장 ]
이때에 도요(陶堯:중국 요임금)가 천산(天山)의 남쪽에서 일어났다. 일차로 출성(出城)한 사람들의 후예였다. 일찍이조선제시(祭市)의 모임에도 왕래하며 서쪽 보간(堡干)에게 도(道)를 배웠다. 그러나 수(數)에 대하여 부지런히 배우지 않고스스로 9수 5중(九數五中)의 이치를 잘못 인식하고 중앙 5(五) 외의 8은, 1에서 8로 생각하고, 내(內)로써 외(外)를제어하는 이치라 하여, 오행(五行)의 법을 스스로 만들어 제왕의 도를 주창하므로, 소부(巢夫)와 허유(許由) 등이 심히 꾸짖고,단절하였다.

요가 곧 관문 밖으로 나가, 무리를 모아 묘예(苗裔)를 쫓아냈다. 묘예는 황궁씨의 후예이며, 그땅은 유인(有因)씨의 고향이었다. 후대에 임검(壬儉)씨가 여러 사람을 이끌고 부도를 나갔기 때문에, 비어 있는 그 기회를이용하여 습격하니, 묘예가 마침내 동서북의 삼방(三方)으로 흩어졌다. 요가 곧 9주(九州)의 땅을 그어 나라를 만들고, 스스로5중앙의 제왕이라 칭하며, 당도(唐都)를 세워, (조선)의 부도와 대립하게 되었다. 이때에 거북이 등에 지고 나왔다는부문(負文)과, 명협(蓂莢)이 피고 지는 것을 보고, 신의 계시라 하며 그것으로 인하여, 역(曆)을 만들고, 천부(天符)의이치를 폐지하여 부도(符都)의 역을 버리니, 이는 인간 세상에서 두 번째의 큰 변이었다.

[제 18장 ]
이에 임검씨가 심히 걱정하여, 유인씨(有因氏)의 후손 유호씨(有戶氏)의 父子(부자)로 하여금 환부(鰥夫)와 권사(權士)등100여인을 인솔하고 가서 그를 깨우치도록 하였다. 요가 그들을 맞아, 명령에 복종하고, 공순하게 대접하기에 하빈(河濱)에서살게 하였다. 유호씨가 묵묵히 그 상황을 관찰하고, 스스로 사람들을 가르치며, 여러 번 그 거처를 옮겼다. 이보다 먼저 유호씨가부도에 있을 때에 칡을 먹고 오미를 먹지 아니하였으므로, 키는 열 자이고, 눈에서는 불빛이 번쩍였다.

임검씨보다 나이를 100여 살이나 더 먹었으며,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직업(業)을 이어, 임검씨를 도와, 도를 행하고, 사람들을가르치고 있었다. 이에 이르러 사자(使者)가 되어, 완미(頑迷)한 세상을 구제하니, 그가 하는 일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때에 堯(요)임금은 유호씨의 아들 유순(有舜)의 사람됨을 보고, 마음속에 딴 뜻을 가지고 국사를 맡기고 도와주며, 두 딸로유혹하니, 순이 곧 미혹하여졌다. 유순은 일찍이 (조선)의 천부도의 법을 집행하는 환부가 되어 있었으나, 능력이 미치지 못하여무절제한 생활로 요의 두 딸을 밀취(密娶)하고, 어리석게도 요에 붙어 협조하였다.

[ 제 19장 ]
이때 유호씨가 수시로 경계하도록 타일렀으나, 순은 예, 예, 하고 대답만 하고는 고치지 않았다. (조선의 환부) 순은 끝내 요의촉탁을 받아들여 (조선)의 현자를 찾아 죽이며, 묘족(苗族)을 정벌하였다. 유호씨가 마침내 참지 못하여 꾸짖고, 그를 토벌하니,순은 하늘을 부르며 통곡하고, 요는 몸을 둘 땅이 없으므로, 순에게 양위하고, 자폐(自閉)하였다. 유호씨가 이르기를, 오미의재앙이 끝나지 않았는데, 또 다시 오행(五行)의 화를 만들었으므로, 죄는 땅에 가득하고, 북두성은 하늘을 가리어, 수사(數事)가많이 어그러져, 인간 세상이 곤고(困苦)하여 졌다. 이는 불가불 바로잡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알지못하고 죄를 범하는 자는 혹 용서하여 가르칠 수도 있으나, 알고 죄를 범하는 자는 비록 부자간이나 형제간이라도 용서할 수가없다. 하고 곧 둘째 아들 유상(有象)에게 명하여 권사(勸士)를 이끌고 무리를 모아 죄를 알리고, 그를 치게 하니, 수년 동안의전투에서 마침내 당도(唐都)를 혁파(革罷)하였다. 요는 유폐(幽閉) 중에 죽고, 순은 창오(蒼梧:광서성 창오현)의 들에도망하여, 도당(徒黨)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요의 무리 우(禹)가 순이 아버지와 자식간의 죽이려는 원한이 있으므로 이에 이르러,그를 추격하여 죽여 버렸다. 순의 두 처(妻)도 역시 강물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우가 곧 정명(正命)으로입공(立功)하겠다고 말하고, 상의 군사를 위로하고 돌아가므로 유호씨가 물러나서 우의 소행을 관찰하니, 이 때에 우가 도읍을옮기고, 무리를 모아 방패와 창을 보수하고 유호씨(순의 아버지)에게 항거하며, 자칭 하왕(夏王)이라 하였다.

[ 제 20장 ]
우가 마침내 부도를 배반하고 도산(塗山)에 단(壇)을 설치하고 서남 제족을 정벌하여, 제후(諸候)라 하고, 도산회의에서 조공을받았다. 이는 부도 제시(符都際市)의 (조선)의 제도를 본받은 것이었으나, 폭돌(暴突)한 것이었다. 이에 천하가 시끄러워지고,(조선)의 부도로 달아나는 도망자가 많아지자 우가 곧 수륙(水陸)의 길을 차단하여, 부도와 연락을 끊고, 내왕하지 못하게하였다. 그러나 감히 부도를 공격하지는 못하였다. 이 때 유호씨가 서방(서역)에 살면서, 묘예(苗裔)를 수습하여, 소부와 허유가사는 곳과 통하고, 서남 제족과 연락하니, 그 세력이 심히 왕성하여, 스스로 읍(邑)을 이루었다.

유호씨가 곧권사(權士)를 파견해서 우에게 유시(諭示)하기를, [요는 천수(天數)를 모르고 땅을 쪼개서 천지를 제 멋대로 하였다. 기회를틈타 독단(獨壇)을 만들고, 사사로이 개나 양을 기르기 위하여, 사람을 몰아낸 후, 자칭 제왕이 되어, 혼자서 처리 하였다.세상은 토석(土石)이나 초목처럼 말이 없고, 천리(天理)는 거꾸로 흘러, 허망에 빠져버렸다. 이것은 거짓으로 천권(天權)을훔쳐, 사욕의 횡포를 자행한 것이다.

제왕이 만약 천권을 대행하는 자라면, 능히 일월(日月)을 개폐(開閉)하여,만물을 조작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제왕이란 수의 요체(數諦)요, 사람이 거짓으로 칭하는 것이 아니다. 거짓으로 칭한다면사기와 허망의 죄악이 될 뿐이다. 사람의 일이란 증리(證理)이며, 세상의 일이란 그 증리한 일을 밝히는 것이며, 이외에 또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부도의 법은 천수의 이치를 명확하게 증명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그 근본 수행이 업무이며, 그 근본이복(福)을 받게 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비록 선후는 있으나, 높고 낮음이 없으며, 주는자와 받는 자는 비록 친숙함과 소외는 있으나 끌어들이고 몰아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사해가 평등하도록 제족(諸族)이 스스로행하게 하는 것이다. 오직 오미(五味)의 죄책을 보속(報贖)하는 것과, 마고대성의 업(業)을 회복하는 것은, 언제나 한 사람의희생으로 주관하는 것이지 여러 사람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일을 성취하는 사람은 예로부터 인간 세상에서 섞여서 살지않았다. 황궁(黃窮)씨와 유인(有因)씨의 예가 바로 그것이다.

[ 제 21장 ]
또 소위 오행(五行)은,천수(天數)의 이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방위(方位)의 중앙 5는 교차(交叉)의 뜻이지, 변행(變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변하는 것은 1로부터 9까지 이므로, 5는 언제나 중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9가 윤회하여, 율려(律呂)가 서로 조화를 이룬후에 만물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는 수(數)의 기본을 이르는 것이다. 5,의 7이 대연지수(大衍之數)에 이르면 環(환:고리)를이루고 그 위치가 5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또한 4, 7이 있는 것이다. 또 그 순역(順逆), 생멸(生滅), 윤멱(輪冪)은4요, 5가 아니니, 즉 원수(原數)의 9는 불변수이기 때문이다.

또 윤멱이 한 번 끝나는 구간은 2X4=8사이의 7이요, 5가아니다. 또 그 배성지물(配性之物)은 금(金), 목(木), 수(水), 화(火),토(土)의 다섯 중에서금(金)과 토(土)를 왜 따로 구별하는가. 하면 약간의 차이 때문에 구별을 하고자 한다면, 기(氣), 풍(風), 초(草),석(石)따위는 어찌 같이 들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다 들자면, 수는 없으며, 엄별해서 들자면, 금,목,수,화 혹은토,목,수,화의 넷이며, 다섯이 아니다. 더욱이, 그 물성(物性)을 어떤 이유로 수성(數性)에 짝을 지워 지는가?수성지물(數性之物)은 그 원수가 9이며, 5가 아니다. 그러므로 5행설은, 참으로 황당 무괘한 말인 것이다. 이로써 인간세상을증리(證理)하는 일을 무혹(誣惑)하여, 곧 천화(天禍)를 만들게 되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인가?.

[ 제 22장 ]
또그 역제(曆制)는, 천수(天數)의 근본을 살피지 못하고, 거북이나 명협의 미물(微物)에서 근본을 취한 요는 또 무슨 속셈인가.천지의 만물이 다 수에서 나와, 각각 수를 상징하고 있는데, 하필 거북과 명협뿐이겠는가?. 그러므로 모든 물사(物事)에, 각각그 역(曆)이 있다. 역이라는 것은 역사(歷史)이다. 그러므로, 요의 역제는, 즉 거북과 명협의 역이요, 인간의 역이 아니며,인간 세상에서 합당하지 못한 것은 진실로 당연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삼정(三正)을 번복하여, 구차스럽게맞추고자 하였으나 얻지 못하여 마침내 하늘의 죄를 끌어들였다. 역(曆)은, 인생증리(人生證理)의 기본이므로, 그 수는 몸소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역이 바르면, 천리(天理)와 인사(人事)가 증합(證合)하여 복이 되고, 역이 바르지못하면, 천수에 어긋나 화가 된다. 이는 복은 이(理)가 존립(存立)하는데 있고, 이는 정증(正證)에서 존립하는 까닭이다.그러므로, 역이 바르고 바르지 못한 것은, 인간 세상 화복(禍福)의 발단이니, 감히 삼가 하지 않을 것인가. 옛날,오미(五味)의 화(禍)가, 한사람의 미혹에서 나와서, 만대의 산사람(生靈)에게 미치고 있는데, 지금 또 다시 역의 화가, 장차천세(千世)에 미치게 될 것이니 진리에 두렵기만 하구나.

[ 제 23장 ]
천도(天道)가 돌고 돌아,종시(終始)가 있고, 종시가 또 돌아, 4단씩 겹쳐 나가, 다시 종시가 있다. 1 종시의 사이를 소력(小曆)이라 하고, 종시의종시를 중력(中曆)이라 하고, 네 번 겹친 종시를 대력(大曆)이라 한다. 소력의 1회(回)를 사(祀)라 하며, 사에는13기(期)가 있고, 1기에는 28일이 있으며, 다시 4요(曜)로 나뉜다. 1요에는 7일이 있고, 요가 끝나는 것을 복(服)이라한다. 그러므로, 1사에 52요복이 있으니, 즉 364일이다. 이는 147성수(性數)요, 매 사의 시작에 대사(大祀)의단(旦)이 있으니, 단과 1은 같기 때문에 합하여 365일이 되고, 3사의 반(半)에 대삭(大朔)의 판(?)이 있으니, 판은사의 2분절이다. 이는 258법수(法數)요, 달이 긴 것이 1일과 같기 때문에, 제 4의 사는 366일이 된다.

10사의 반(半)에 대회(大晦)에 구가 있으니, 구는 시(時)의 근원이다. 300구가 1묘(?)가 되니, 묘는 구가 눈으로 느껴지는것이다. 이와 같이 9633묘를 지내서 각(刻), 분(分), 시(時)가 1일이 되니, 이는 369의 체수(體數)다. 이와 같이,끝나고 또 시작하여, 차차 중력(中曆)과 대력(大曆)에 미쳐서, 이수(理數)가 곧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저 요의 이 세 가지잘못은, 허위(虛僞)의 욕망에서 나온 것이니, 어찌 가히 부도 실위(實爲)의 도에 비할 수가 있겠는가. 허위는, 안에서이(理)가 불실하여, 마침내 멸망에 이르고, 실위는, 이(理)가, 나를 언제나 만족하게 하여, 스스로 함께 존립한다.

[ 제 24장 ]
유호(有戶)씨가 이와 같이 단단히 타일러서, 제법(諸法)을 폐지하고, 부도로 돌아 올 것을 권유하였으나, 우(禹)가 완강히 듣지아니하고, 반대로 위협이고, 모욕하며, 곧 무리를 이끌고, 유호씨를 수차례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모산(茅山:강소성구곡산) 진지(陣地)에서 죽었다. 이에 하(夏)나라 중생들이 비분강개하며, 죽기를 원하는 자가 수 만이였다. 이는 거의가 우와함께 치수(治水)를 한 무리들이었다.

우의 아들 계(啓)가 대군을 이끌고, 유호씨의 읍(邑)으로 진격하여 왔으나유호씨의 군은 불과 수천 명이었으나 하(夏)나라 군사는 싸우면 반드시 패배하여, 한번도 승리하지 못하자 계가 마침내 두려워하며퇴진하고, 격분한 무리들도 다시는 공격하지 않았다. 이에 유호씨가 하(夏)나라 중생들이 눈이 먼 것을 보고, 고치기가 어렵다고생각하여, 장차 (중국 대륙)의 서남쪽 지방의 여러 부족(西南諸族)을 가르쳐주기 위하여, 무리를 이끌고 가니, 그 읍(邑)이자연히 없어졌다.

[ 제 25장 ]
이로부터, 천산(天山) 남쪽 태원(太原: 산서성)의 지역이,뒤숭숭하고 떠들썩하며, 주인이 없는 것과 같이 소위 왕이란 자는 눈이 멀고, 소위 백성은 장님이 되어, 암흑이 중첩하였다.강자는 위에 있고, 약자는 아래에 있고, 왕은 제후를 나라에 봉하고, 백성들의 생활을 제압하는 풍폐(風幣)가 만연하여 고질이되고 마침내 서로 침탈하고 헛되게 생령(生靈)을 죽이기에 이르니, 한 가지도 세상에 이로운 것이 없었다. 그러한 까닭으로,하은(夏殷)이, 그 법으로 다 망하고서도, 끝내 그 까닭을 알지 못하였다. 이는 스스로 조선의 부도와 단절되어 진리의 도를 들을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유호씨가 그 무리를 이끌고, 월식, 성생(月息)주 와 星生(성생)주의 땅에들어가니, 백소씨(白巢氏)와 흑소씨(黑巢氏)의 후예가, 오히려 소(巢)를 만드는 풍속을 잊지 아니하고, 고탑(高塔)과층대(層臺)를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천부(天符)의 본음(本音)은 잊어버리고, 탑을 만드는 유래를 깨닫지 못하여, 와전되어 다른도(道)가 되고, 서로 시기하고 의심하며, 투쟁하며 정벌을 일로 삼았다.

마고(麻姑)의 일은 거의가 기괴하게되고, 형적이 아주 없어지고 허망하였다. 유호씨가 두루 제족의 지역을 돌아보고, 마고의 도와 천부의 이치를 설명해 주었으나,모두가 의아하게 여기고,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오직 그 전고자(典古者)가 송구하게 여기고 일어나서 맞이하므로, 이에유호씨가 저술한 본리(本理)를 전해주었다.

[ 제 26장 ]
임검씨가 유호씨의 행상(行狀)을 듣고, 그일을 장하게 여겨, 유호씨의 부족에게 교부(敎部)에 취업시켜 살도록 하였다. 이때, 임검씨가 하토(夏土)의 형세를 심히 걱정을하고, 마침내 입산(入山)하여, 해혹복본(解惑復本)의 도를 전수(專修)하였다. 임검씨의 아들 부루씨(夫婁氏)가 천부삼인을이어받아, 천지가 하나가 되는 이치를 증명하고 사람은 한 사람에서 태어나 한 가족이 대가족을 이루었다는 부조(父祖)의 도를 널리보급하고 환웅천왕의 법을 행하도록 하여, 인간 세상에 증리(證理)의 일에 전념하도록 하였다.

일찍이운해족(雲海族)과 긴밀하게 연락하며, 하토(夏土)가 하나가 되어 돌아오기를 시도하였으나 다른 도가 점차 성하여, 마침내 뜻을이루지 못하였다. 부루씨(夫婁氏)는 아들 읍루씨(浥婁氏)에게 천부를 전하고 입산하였다. 읍루씨가 날 때부터, 대비원(大悲願)을가지고,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하족(夏族)이 도탄에 빠진 것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진리가 사단(詐端)의 지역에 떨어진 것을 슬프게생각하며 드디어 명지(明地)의 단에 천부를 봉쇄하고, 곧 입산하여, 복본의 대원(大願)을 전수(專修)하며, 백년 동안 나오지아니하니, (조선 삼한)의 유중(遺衆)들이 통곡하였다.

임검씨가 후천(後天)의 말세 초에 태어나, 사해의 장래를미리 살피고, 천부도를 건설하여 모범을 보이며 천년간의 큰 功業(공업)을 이루어졌다. 이에 이르러 천부의 전해짐이 끊어져,폐지되고 마고의 자손들이 나누어져 살게 된 이래로, 황궁(黃穹), 유인(有因), 환인(桓因), 환웅(桓雄), 임검(壬儉),부루(夫婁), 읍루(浥婁)의 7세에 천부가 전해진 것이 7천년이었다.

[ 제 27장 ]
은(殷)나라의망명자 기자(箕子)가, 패배한 군사와 난민을 이끌고, 부도의 서쪽에 도망하여 왔다. 명예를 위하여 당우(唐虞)의 법을 행하고,오행 삼정(五行三正)을 써서, 홍범 무함(洪範巫咸)을 시행하였다. 환웅천왕의 도와는 절대로 서로 용납할 수 없었다. 은의군민(軍民)이 무력으로 부도의 유중(遺衆)을 억압하므로, (조선 삼한)의 유중이 마침내 명지단(明地壇)을 봉해버리고, 동쪽海濱(해빈)에 피하여 살았다. 곧 옛날 사례벌(斯禮筏)의 공지(空地)였다.

사례벌 광야(曠野)에는 긴 깃대를걸어 놓고 유배된 사람이, 아침에 내걸고, 저녁에 거둬들여서, 지키는 사람으로 하여금, 먼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도망가지않았음을 알리게 하는 깃 빨이었다. 곧 육촌(六村)을 설치하고, 가까이 살고 있는 제족과 분담하여, 함께 지키며, 각각한(韓)이라 하고, 보위(保衛)하였다. 한은 보위의 뜻이다.

북쪽의 마한(馬韓)과, 남쪽의 변한(卞韓)과,동쪽의 진한(辰韓)과 삼한의 부족이 자치를 행하고, 선세(先世)의 도를 굳게 지키며, 이후 천년 사이에 기자의 법을 받아들이지아니하고, 보위하고 방비하는 일에 전념하여, 거의 여력이 없었다. 이 때 하토(夏土)는 쟁탈의 바람이 점차 격심하여, 동요와혼란이 삼한에 까지 파급되므로, 육촌의 사람들이 서로 모의하고, 서쪽의 화가 점차 임박하여, 보수(保守)하기가 장차 위태로우니,어쩔 수 없이 통합 방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국경의 경계를 설정하고, 혁거세를 추대하여,통어(統御)하는 일을 위임하고 모든 부족 역시 수령이 방비하게 하였다. 남쪽은 백제(百濟)며, 북쪽은 고구려(高句麗)였다.고구려의 (고주몽)은 곧 북보(北堡)의 땅을 회복하여, 서침(西侵)하는 사람들을 쫓아버리고, 그 지역을 완전하게 보위하였다.

[ 제 28장 ]
이보다 먼저, 육부(六部)의 촌장(村長)들이 약(藥)을 캐는 날에 모여서, 선도산 단묘(仙桃山壇廟)의 성모(聖母)가 알을 낳았다는말을 듣고, 여러 사람이 가서 보았다. 동쪽의 우물을 보로 덮어 가리고, 껍질을 벗겨서, 남아를 얻었다. 몸에서는 빛이 나고,귀가 부채만큼 컸다. 곧 박(朴)으로써 성을 삼고, 이름을 혁거세(赫居世)라 하였다. 박은 단의 어음이 박달이기 때문에, 그것을취하여 성을 삼았으며, 혁(赫)은 빛날 혁이니, 즉 광명으로써 암흑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구원한다는 뜻이다.

육촌의 사람들이 함께 양육하니, 점차 자라면서, 신기(神氣)가 수명(秀明)하고, 대인(大人)의 도가 있었다. 13살에 여러 사람이추거(推擧)하여, 거서간(居西干)이 되었다. 거(居)는 거(据)요, 간(干)은 방(防)이요, 장(長)이다. 즉 서방에 의거하여,경계하는 방어장(防禦長)의 뜻이다. 서방은 즉 서쪽에 살면서 침략을 일삼고 사도(詐道)를 행하는 자들이다.

[ 제 29장 ]
혁거세씨는, 천성(天性)은 지혜와 덕성을 겸한 神聖(신성)이시다. 또한 현비(賢妃) 알영(閼英)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 때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이성(二聖)이라 하였다. 여러 부족을 능히 통솔하며, 선세(先世)의 도를 행하며, 제시(祭市)의 법을부흥하고, 남태백산(南太白山)에 천부소도(天符小都)를 건설하였다. 중대(中臺)에 천부단을 설치하고, 동서남북에 보단(堡壇)四臺(4대)를 설치하여, 계불의식(禊祓儀式)을 행하였다.

대인(大人)으로 하여금, 금척(金尺)의 이치에 준거하여천지시원의 근본을 증리(證理)하고, 옥관(玉管)의 음을 조절하여 율여화생법(律呂化生法)을 수증(修證)하였다. 해마다 10월에백의제(白衣祭)를 행하였다. 이는 황궁씨의 속신백모지의(束身白茅之義)를 따르는 것이었다. 달구(達丘)에 조시(朝市)를 설치하고,율포(栗浦)에 해시(海市)를 열어, 육해 교역의 제도를 수립하였다. 항상 나라를 순행(巡行)하며, 밭을 갈아 농사를 지으며뽕나무를 많이 심어 농상(農桑)과 방적(紡績)을 권장하니, 들에는 농작물이 쌓이고, 집에는 베를 짜서 저장되었다.

이와 같이 국내에 선행을 권장하여 나라를 부흥시키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고락(苦樂)을 같이 하고, 외국에는 방패와 창을 쓰지아니하며, 이웃과 더불어 평화를 보존하였다. 한 마음으로 궁전을 건설하고, 옛 풍속을 지키는 일에 전념하시니, (신라) 국경내에 도가 있어, 옛날과 흡사 하였다.

이 때 弁韓(변한)과 진한(辰韓)의 제족이 합동하여 협력하니, 비록경계를 두고 방비는 하였으나, 國(나라) 라고 칭하지 아니하고, 또한 왕이라고 칭하지도 아니하였다. 국경 내를 다스리는 일은선세(先世)의 법을 준수하여, 제회(祭會)에서 의결되지 아니하면, 일찍이 한가지의 일도 행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영수계위법(領首繼位法) 역시 혈통의 계열에 한정할 필요가 없었으며, 현명한 사람을 택하여 영수로 삼았다.

[ 제 30장 ]
나이 20살 쯤 된 남자 중에서, 아름답고 말을 잘하는 사람을 택하여 마랑(馬郞)이라는 직책을 주고, 명령을 받들어 원행(遠行:세계 여행)하게 하였다. 혹 성생 월식의 옛 땅에 나아가며, 혹 운해와 천산의 여러 지역으로 여행하게 하였다. 이 (세계여행)의 원행은 천부도의 수신(修身)이며 예부터 전해 내려온 제도이었다.

(신라 국이) 침략자를 피하여 동해에살고 있는지 천여년 사이에 제시회(祭市之會)를 열지 못하여, 서로 내왕이 오래 동안 끊어지고, 또 봉국쟁탈(封國爭奪)의 풍조가사해에 만연하여, 제족이 각자 나라를 칭하고, 오랜 세월에 전란이 반복되니, 삼한족은 종횡으로 나누어지고, 말이 잡다하게변하였다.

천부는 거의 망각하기에 이르렀고, 혹 아는 사람이 있어도, 다 변형(變形)되어, 음이 다르니,마랑들의 원행이 매우 어려워, 순절(殉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마랑들이 만리 원행에서도 (천손 조선국)의 절조를 지켜,능히 굳은 뜻을 가지고, 백난을 극복하며 사명을 완수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그 인격은 진실로 호매(豪邁)하였다. 장하게도귀환하면, 반드시 천문(天文), 지리(地理), 역수(曆數)와 박물(博物)의 직사(職事)에 임명하였다. 이는 곧 선세에 사해를통화하여, 인간 세상을 하나의 법(조선국의 법)에 맞추는 유업이었다.


[ 제 31장 ]
[신라는]서례벌(西禮筏)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창업한 후로, 어느덧 삼세(三世)를 지나니, 백여 년이 되었다. 세상의 풍조가 크게변하여 보수파들의 입지가 어려워졌다. 이에 국왕(國王)을 세워, 대권을 행사하자는 여론이 대두하여, 이러니 저러니 하고시끄러웠다. 그 반대자들은 선세 유법의 천부는 온 세상을 밝게 비추게 될 것이다. 지금의 시대는 비록 어렵더라도 나라를 튼튼히방비하며 보수하고 그 때를 기다리는 것이 옳지 어찌 사단(詐端)에 굴종하여 스스로 소자(小子)가 되어, 패리(悖理)의中國(중국)에게, 모독을 당하는 것을 참을 수가 있겠는가?. 차라리 이와 같이 된다면, 의롭게 목숨을 바쳐, 진도(眞道)를뚜렷하게 나타내어, 후세에 이름을 남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왕을 세워 대권을 행사하자고 주장하는진보파 들에게 찬성하는 사람들은, 외세가 긴박하여 파동이 격심하니, 어떻게 나라를 방비하겠는가. 담장 안에서도 이반하여시끄러움이 그치지 아니하는데, 어떻게 보수한단 말인가?.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같이 경쟁하는 마당에 뛰어들어,부강한 뒤에, 유업을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사해 제족이 사도에 미쳐 날뛰어, 봉사가 된 지 오래 되었다.

우리가 지금 자멸해 버리면 누가 (조선 삼한)의 眞道(진도)를 현창하며, 후세에 누가 있어, 이를 알 것인가?.만약 능히 방비하여, 오랫동안 보수한다면 새 천마리 가운데 백로 한 마리와 같이 고립되어, 오히려 이도(異道)가 되고 세상에서존립할 수가 없는 종교가 될 것이니, 장차 또 그를 어찌한단 말인가?.

이 같은 것은 다 옳지 못하여, 오직택할 것은 나라를 세우고 왕을 높이 받들고 대권(大權)을 집행하며, 군마를 호령하여, 파죽지세로 전진하고, 부도 전역을 회복하는것뿐이다. 부도를 다시 세워, 그 근본을 명시하면, 제족이 비록 완강하더라도, 반드시 각성하여, 근본으로 돌아올 것이다.

[ 제 32장 ]
마침내 중론(衆論)이 人望(인망)이 있는 사람으로 결정되어 왕국 수립을 주장하던 석(昔)씨에로 돌아 왔다. 석씨는동보(東堡:인도) 유배인의 후예로, 옛날부터, 해빈(海濱)에서 살아오던 사람이었다. 체격이 장대하고 지략이 있었으므로,남해씨(南海氏)가 딸을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다. 이에 이르러, 대중의 여망에 따라, 탈해(脫解)가 [신라] 왕위를 계승하고왕이라 칭하게 되었다. 즉 보수(保守)의 질고에서 벗어난다는 뜻이었다.

또 서라국(徐羅國)이라 칭하고, 비로소방패와 창을 사용하여 국경 내를 평정하였다. [탈해]는 用兵術(용병술)을 과도하게 행하여, 필경은 배척당하였다. 중론이 다시박씨의 보수계로 돌아오니, 이에 박씨가 다시 계승하고, 왕국의 칭호를 폐지하였다. 4세를 지나, 중론이 또 석씨에게로돌아갔으나, 단 정벌하는 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벌휴씨(伐休氏)였다.

석씨 4세 사이에 정벌을 다시 시작하니,중론이 중화(中和)를 주장하는 김씨에게 돌아갔다. 김씨는 원래 부도에서 동쪽으로 옮겨와 (진한)에서 살던 (조선족)으로,온양덕후(溫讓德厚)하여, 지마씨(祗摩氏)가 손녀를 주어 아내가 되게 하였다. 이에 이르러 자리를 이으니, 이가 미추씨(味雛氏)이였다. 이 때를 당하여 서북의 환란이 계속해서 일어나도 하나도 조치된 바가 없으므로, 중론이 다시 석씨에게로 복귀하였다. 이에석씨가 다시 자리를 이어, 3세 사이에 征服(정복)하는 일이 허다하여, 백성들의 재물을 탕진하는 왕은 배척을 받는 시대이었다.중론이 다시 김씨에게로 돌아가니, 이에 김씨가 다시 이어 오늘에 이르렀다.

[ 제 33장 ]
오직 근본을지키는 우리민족이 침략자를 피하여 동해에 살면서, 방비하고, 보수한 지 삼백여년 사이에, 중론의 번복이 이와 같았으니, 가히역외(域外)의 풍운이 어떠함을 살필 수가 있었을 것이다. 또 가히 천부의 진리가 사단의 세상에서도 의연하게 살아 있음도 알 수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세 중론이 반드시 이 도는 무너지지 않는 것에 근거하여, 역대 영수들이 오히려 중론의 소재에 부응하지못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과격하지도 않게 느슨하지도 않게 능히 조절하여, 보수파들이 대도를 전하여 마침내 오늘날의 사람들로하여금 가히 천부의 실재를 알게 하였다.

또한 장차 후세의 사람들로 하여금 때를 만나 행하는 사람은 능히天符都(천부도)를 다시 건설하고, 4해를 통합하여 평화시대를 이룩하여 인간 세상을 複本(복본)하여, 진리를 명증(明證)하게 될것이다. 당시 석씨의 이론이 불행에서 행을 성취하는 결과를 맺게 될 것인가?.
觀雪堂관설당) 박제상 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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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천만 한겨레여...!
마고→황궁→유인→환인→환웅→임검→부루→읍루'로 이어지는 수만 년 동안 천부도를 지키며 보전한 사실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게기록되어 있다. 즉 [에덴동산(천산,백산,설산(마고→황궁→유인)] → [환국의 환인] → [배달국의 환웅] → [조선삼한(진한, 마한, 변한)]으로 이어졌다. 삼한 중의 진한은 삼한의 왕을 임명하는 권한이 있고 제사장의 나라이며,임검(진한)→부루(진한)→읍루(진한)으로 계승되었다. 마한은 혁다세가 다스리고 변한은 치두남이 다스렸던 것이다. 또한 임검씨는황제헌원의 나라 유웅국을 섭정했다. 단군왕검은 황제헌원의 외 손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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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堤上(363~419?) : 성은 朴氏, 이름은 堤上, 자는 仲雲, 호는 桃園 혹은 桃源, 石堂, 觀雪堂, 月城人으로 신라눌지왕 8년(363년) 9월에 良州 忠孝洞에서 태어나 경주 三綱洞에서 자랐다. 박제상은 내물왕 28년 383년에 간관(諫官)으로임명되고, 그 후 보문전 태학사에 전보되었다. 왕명으로 서북의 양벌과 각 진을 순무하고 387년에는 보문각 이척랑에 임명되어기자로 정전원을 올렸다. 보성왕 2년 403년 봄에 시중에 발탁되어 상례도를 뽑아 올리고, 414년에 차랑주간이 되었다.418년에 고구려에 들어가 왕제 복호를 구해오고,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왕제 말기차을 돌아오게 한 후 붙잡혀 목도에서 죽었다.그 후 조정에서는 대사랑을 추증하고 단양군에 봉하였으며, 또 동명 후에 봉하고 충렬의 시호를 내렸다.
[문헌 : 동국열전, 화해사전, 영해박씨세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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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는 징심록 상교 제1지라고 하며, 서기 1953 년( 단기 4286 년 ) 박 금선생의 프린트본으로 세상에 알려진 책이라전하고 있다. 또한, 이 사서의 저자는 신라 눌지왕(서기 417-456년)때, 치술령 망부석의 주인공인 관설당 박 제상으로전해지고 있으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부도지의 내용을 율과 려, 음과 성, 음상과 향상, 5 음 7 조의 율려등으로 이치를설명한 것으로 보아, 부도지는 박 제상의 아들이며 방아타령의 대악으로 유명한 백결선생이 지어서, 사회적으로 이름있는 아버지 박제상의 이름으로 전한 것으로 생각된다.

영해 박씨의 시조 박 제상은 아들인 백결선생 박 문량에게 천부을전하였고, 백결선생 박 문량은 신선사 마애불상들이 있는 단석산 깊은 곳에서 천부를 해독하여, 다시 아들 박 마령간에게 전하고,아들 박 마령간은 김 유신에게 천부의 이치를 가르쳐서 김 춘추와 삼국을 통일하는데 도움이 되는 가르침을 전했다고 한다.

또한, 귀주대첩의 박 서장군도 영해 박씨의 후손이며, 근세조선의 태조, 이 성계의 왕사인 자초 무학대사도 영해 박씨의 후손이며,세종대왕을 도와서 아악을 정리한 박 연도 영해 박씨의 후손이다. 천부의 내용이 적힌 징심록은 세조 반정 때 감춰지고, 후에금오신화의 저자인 매월당 김 시습이 천부를 풀이한 금척지를 영해 박씨 문중에 전하였다고 한다. 영해 박씨 문중의 박금선 선생에의하여 부도지가 전해진 것이라 한다.

신라의 충신 박제상이 편찬한 부도지는 중국의 사서들과 맥을 같이하며, 우리나라 정통사서의 환단고기의 내용을 입증하는 매우 중요한 우리 대한민족의 국보적 정통사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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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堤上박제상(363-419?)의 자는 仲雲, 호는 桃園(도원) 혹은 桃源, 石堂, 觀雪堂, 月城人으로 신라 訥祗王(눌지왕)8년(363년) 9월에 良州 忠孝洞에서 태어나 경주 三綱洞에서 자랐다. 박제상을 일본에서는 毛麻利叱智(모마리질지)라 이름하였다. 박제상은 시조 혁거세의 후손이며, 파사 이사금의 5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아도(阿道) 갈문왕(葛文王)이고, 아버지는파진찬 물품(勿品)이다.

박제상은 벼슬길에 나가 내물왕 28년(383)에 諫官(간관)으로 임명되고 그 후 보문전태학사에 전보되고 387년 보문각 이척랑에 임명되었다. 보성왕 2년(403)에 시중에 등용되고 414년 삽량주간(歃良州干)이되었다. 이보다 앞서 실성왕 원년 임인(402)에 왜국과 강화하였는데, 왜왕이 나물왕의 아들 미사흔(未斯欣)을 볼모로 삼기를청하였다. 왕은 일찍이 나물왕이 자기를 고구려에 볼모로 보낸 것을 원망하여, 그 아들에게 유감을 풀고자 하였음으로 거절하지 않고보냈다.

또 11년 임자(412)에는 고구려가 역시 미사흔의 형 복호(卜好)를 볼모로 삼고자 하므로 대왕은 또그를 보냈다. 눌지왕이 즉위하자 말을 잘하는 사람을 보내어 [두 아우를] 구해서 맞이할 것을 생각하고 수주촌간(水酒村干)벌보말(伐寶靺)과 일리촌간(一利村干) 구리내(仇里迺), 이이촌간(利伊村干) 파로(波老) 세 사람이 현명하고 지혜가 있다는 말을듣고 불러서 물었다.

“나의 동생 두 사람이 왜와 고구려 두 나라에 볼모가 되어 여러 해가 되었어도 돌아오지못하고 있다. 형제의 그리운 정을 생각하면 참을 수가 없소. 제발 살아서 돌아오게 하여야겠는데 어찌하면 좋겠는가?” 세 사람이똑같이 대답하였다. 신들은 삽량주간 제상이 성격이 강직하고 용감하며 지모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전하의 근심을 풀어 드릴 수있을 것입니다. 이에 제상을 불러 앞으로 나오게 하여 세 신하의 말을 하며 가 주기를 청하였다.

제상이대답하기를 “신이 비록 어리석고 변변치 못하오나 감히 명을 받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드디어 418년 사신의 예로써 고구려에들어가 왕에게 말하였다.“신이 듣건대 이웃 나라와 교제하는 도는 성실과 신의뿐이라고 합니다. 만일 볼모를 서로 보낸다면오패(五覇)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니 참으로 말세의 일입니다. 지금 우리 임금은 사랑하는 아우가 이곳에 잡혀 있은 지 거의10년이나 되니, 우리 임금님은 형제가 어려움을 겪으면 서로 돕는 뜻으로서, 오랜 회포를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대왕께서은혜를 베풀어 돌려보내 주신다면 소 아홉 마리에서 털 하나가 떨어지는 정도와 같아서 별 손해가 없을 것이며, 우리 임금은 대왕을덕스럽게 생각함이 한량이 없을 것입니다. 왕은 이 점을 유념해 주소서!”

[고구려] 왕은 “좋다”하고, 함께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귀국하자, 대왕이 기뻐하며 위로하여 말하기를 “내가 두 아우 생각하기를 좌우의 팔과 같이 하였는데,지금 단지 한 쪽 팔만을 얻었으니 어찌하면 좋을까?” 하였다. 제상이 대답하였다. “신은 비록 열등한 재목이오나 이미 몸을나라에 바쳤으니 끝내 명을 욕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구려는 큰 나라요, 왕 역시 어진 임금이므로 신의 말 한 마디로깨우치게 할 수 있었지만, 왜인의 경우는 입과 혀로 달랠 수는 없으니 마땅히 거짓 꾀를 써서 왕자를 돌아오게 하겠습니다.

신이 저 곳에 가거든 청컨대 나라를 배반한 죄로 논하여, 저들로 하여금 이 소식을 듣도록 하소서!” 이에 죽기를 맹세하고 처자도보지 않고 율포(栗浦)에 다다라 배를 띄워 왜로 향하였다. 그 아내가 듣고 포구로 달려가서 배를 바라다보며 대성통곡하면서 “잘다녀오시오.” 하였다. 제상이 돌아다보며 “내가 명을 받아 적국으로 들어가니 그대는 다시 볼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아 주시오!”하고는 곧바로 왜국으로 들어가서 마치 조국을 배반하여 온 자와 같이 하였으나 왜왕이 의심하였다.

백제인으로서전에 왜에 들어간 자가 신라가 고구려와 더불어 왕의 나라를 도모하려고 한다고 참소하였으므로, 왜가 드디어 군사를 보내 신라 국경밖에서 순회 정찰케 하였다. 마침 고구려가 쳐들어와 왜의 순라군(巡邏軍)을 포로하고 죽였으므로, 왜왕은 이에 백제인의 말을사실로 여기었다. 또한 신라왕이 미사흔과 제상의 가족을 옥에 가두었다는 말을 듣고 제상을 정말로 조국을 배반한 자로 여기었다.이에 [왜왕은] 군사를 보내 장차 신라를 습격하려 하였는데 겸하여 제상과 미사흔을 장수로 임명하는 한편 향도(嚮導)로 삼아해중(海中) 산도(山島)에 이르렀다.

왜의 여러 장수들이 몰래 의논하기를, 신라를 멸한 후에 제상과 미사흔의처자를 잡아 데려 오자고 하였다. 제상이 그것을 알고 미사흔과 함께 배를 타고 놀며 고기와 오리를 잡는 척 하자, 왜인이 이를보고 딴 마음이 없다고 여겨 기뻐하였다. 이에 제상은 미사흔에게 슬그머니 본국으로 돌아갈 것을 권하니 미사흔이 말하기를 “제가장군을 아버지처럼 받들었는데, 어떻게 혼자서 돌아가겠습니까?” 하였다. 제상이 말하기를 “만약 두 사람이 함께 떠나면 계획이이루어지지 못할까 염려해서 입니다.” 하니, 미사흔이 제상의 목을 껴안고 울며 하직하고 귀국하였다.

[다음날]제상은 방 안에서 혼자 자다가 늦게야 일어나니, 미사흔을 멀리 갈 수 있게 하려고 함이었다. 여러 사람이 묻기를 “장군은 어찌이처럼 늦게 일어납니까?” 하니 “어제 배를 타서 몸이 노곤하여 일찍 일어날 수 없었소.”라고 대답하였다. [제상이] 밖으로나오자, 미사흔이 도망한 것을 알고 드디어 제상을 결박하고, 배를 달려 추격하였으나 마침 안개가 연기처럼 자욱하고 어둡게 끼어멀리 바라볼 수가 없었다. 제상을 왜왕의 처소로 돌려보냈더니, 그를 목도(木島)로 유배보냈다가 곧 사람을 시켜, 섶에 불을 질러전신을 불태운 후에 목을 베었다.

대왕이 이 소식을 듣고 애통해 하고, 대아찬을 추증하였으며, 단양군에봉하였으며, 또 동명후에 봉하고 충렬의 시호를 내리고 그 가족에게 후한 물품을 내리었다. 그리고 미사흔으로 하여금 제상의 둘째딸을 맞아 아내로 삼게 하여 보답하였다. 이전에 미사흔이 돌아올 때 [왕은] 6부(六部)에 명하여 멀리까지 나가 맞이하게하였고, 만나게 되자 손을 잡고 서로 울었다. 마침 형제들이 술자리를 마련하고 마음껏 즐길 때 왕은 노래와 춤을 스스로 지어자신의 뜻을 나타냈는데, 지금 향악의 우식곡(憂息曲)이 그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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